창덕궁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창덕궁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김가연 /

2023-11-11

HERITAGE

조회수 132

  • 안녕하세요?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알려드리고 싶은 USCO 11기 청소년 해설사 김가연입니다. 여러분께 왕실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창덕궁 내전 중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문화재청

  • 낙선재는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이 평소에 머물던 곳으로 동쪽에는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였던 석복헌이 있고 동쪽으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가 머물던 수강재가 있습니다. 세 채의 집이 마치 한 몸처럼 어우러져 낙선재 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문에 있는 현판에는 '장랑문'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썼습니다. 장랑문을 지나 앞마당으로 들어가면 낙선재 일원의 중심건물인 낙선재가 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 13년인 1847년에 지어졌는데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헌종의 문집인 '원헌고'에 수록된 '낙선재 상량문'에 나와 있습니다. "붉은 흙을 바르지 않음은 규모가 과도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화려한 서까래를 놓지 않음은 소박함을 앞세우는 뜻을 보인 것이다.” 헌종은 대단히 실질적이고 검소한 왕이었기에 사치를 경계해 낙선재에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헌종은 그림과 글씨를 좋아해 조선과 중국의 유명한 작품들을 낙선재에 보관하며 감상하기를 즐겼는데 예술을 사랑했던 헌종의 성품과 정서는 기둥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둥이나 벽에 써서 붙인 글귀를 '주련'이라고 하는데 낙선재의 주련에는 청나라의 문인과 금석학자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낙선재의 벽과 담에서도 다양한 무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물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누마루 아랫쪽에는 불을 때던 아궁이 앞에 작은 벽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이 벽은 불씨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는 화방벽으로 무늬가 독특합니다. 얼음 위에 돌을 던졌을 때 얼음이 깨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빙렬무늬'라고 부릅니다. 석복헌과 경계를 이루는 동쪽 벽에는 거북이의 등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누마루와 온돌방 사이에는 둥근 보름달을 닮은 만월문이 있고 다양한 무늬로 장식된 창살 문양들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기품을 느끼게 합니다. 창호에는 한지를 발라 바람과 빛이 자유롭게 통할 수 있게 하였는데 창호를 열면 앞쪽으로는 마당이 한 눈에 들어오고 뒷쪽으로는 아기자기한 꽃계단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 이렇게 아름다운 낙선재는 조선의 마지막 왕가의 슬픔을 기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실로 사용되었고 1926년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승하하자 왕비인 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말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석복헌은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이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집으로 복을 내리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복은 왕세자를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랑하는 여인이 아들을 낳았으면 하는 헌종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루 난간에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물이 있는데 다산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헌종이 일찍 승하해서 헌종과 경빈 김씨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석복헌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이 인생을 마무리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말년은 보내다가 1966년에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둘째 아들 이구가 아내와 함께 머물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 1785년 정조가 지었으며, 단종이 머물렀던 옛 수강궁자리에 세워 수강재라 하였습니다. 대리청정을 했던 효명세자(익종)의 별당이었으며, 헌종의 할머니였던 순원왕후의 거처로 중수하였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가 1989년 7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거처했던 곳입니다. 수강재는 한단 반의 장대석 기단을 설치한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홑처마 양식의 건물입니다.정면 6칸으로 동쪽에 대청을 두고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제일 서쪽칸은 창고로 조성하였습니다. 창살은 단순한 정자살과 띠살창호로 꾸몄습니다. 수강재는 낙선재·석복헌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낙선재 일대의 복원작업 후 2006년부터 공개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직접 촬영